이제 제 나이 곧 서른..
물론 아직 인생의 반도 안 살은 나이지만 요즘 들어서 조금씩 나이의 무게가 느껴지고는 합니다.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그런 아쉬움이 들 무렵 모 방송사의 예능 프로를 봤습니다.
"아날로그지만 괜찮아"
옛날 아날로그 시절로 돌아가서 그 때를 추억하며 그 당시 생활들을 재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심결에 그 방송을 보면서 나도 그 들과 공감할 수 있는 추억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랍기도 했고 반가웠습니다.
발가락으로 돌리던 TV, 꼭 한대씩 때려줬어야 했고..
LP 앨범들.. 저희 어머니는 지금도 엄청 많이 소장하고 계십니다.
어릴때 수도 없이 먹었던 불량 과자들..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워크맨에 테이프들을 넣어서 듣고 좋아하는 부분은 하도 많이 들어서 늘어났죠...
통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삐삐가 오면 두근거리는 맘에 종이 치기만을 기다렸었죠...
사랑 고백은 문자가 아닌 정성껏 쓴 편지였습니다.
그런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나이대가 정말 복 받은 세대라는 사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함께 잘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어찌보면 참 귀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보다 어린 세대들은 아날로그를 거의 겪어보지 못했을 거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디지털에 익숙해지기 힘들어서 그 특성을 잘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저희 세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었기에 이것 저것 다 겪어보는 귀한 경험을 한 세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겠지만 디지털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런 과도기를 거쳐서 과거를 경험하고 또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고 디지털을 배워 나갈 수 있는 건 정말 축복인 것 같습니다.
아날로그의 미학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기다림이라고 봅니다.
저는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를 같이 사용합니다.
이 두 카메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대표 하죠.
어떤 카메라를 잡느냐에 따라 저의 사진 찍는 모습은 크게 달라집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잡았을 때에는 생각할게 별로 없습니다.
뷰파인더로 대상을 확인후 셔터를 누릅니다.
간혹 1초에 5장씩 연사를 날리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결과물을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들은 바로바로 삭제 해버립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카메라는 다릅니다.
한장 한장 찍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디지털 카메라로 10장 찍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맞 먹을 정도입니다.
적당하게 조리개 값과 셔터 스피드를 조절하고
구도를 잡고 초점링을 돌려 초점을 맞춥니다.(대상이 움직여서 초점이 바뀌면 맞을때까지 계속 맞춥니다)
준비가 다 완료된 후에도 혹시나 해서 몇번을 확인해 봅니다.
그리고는 셔터를 누릅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난 후에도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해 볼 수가 없습니다.
36장 짜리 필름이라면 36장을 다 찍을때까지 기다렸다가 현상소에 맞기고 현상이 다 된 후에야 한장 한장 확인해 볼 수 있죠.
간혹 혹자들은 그래도 아날로그 카메라의 결과물이 디지털 카메라의 결과물이 좋다고들 하지만
플래그쉽 1:1 카메라로 Raw로 사진을 찍어서 보정하면 심도나 계조등에서 아날로그가 나을게 별로 없습니다.
삐삐나 워크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휴대폰이나 MP3에 비해 편할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옛날의 잔재일뿐 디지털보다 나을게 없으니 이런걸 알어서 뭐하겠냐구요?
그래도 이 추억의 유산들 속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연락이 삐삐로 왔을때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설레임.
내가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테이프를 감으며 눈을 감고 기다리는 설레임.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현상소에 맞기고나서 나중에 찾으러 갈 때까지 기다리는 설레임.
사랑하는 이에게 정성껏 손으로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설레임.
이 설레임이라는 단어는 기다림에서 나옵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현 디지털에서는 맞지 않는 단어지요.
이러한 기다림에 대해 너그러워 질 때 사람은 정도 생기고 베품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참 사회가 각박해 졌다고들 합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말이죠...
이러한 개인주의, 빨리빨리 병.. 이런 것들은 어찌보면 결국 디지털 사회의 폐해입니다.
이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부족하고 없는 시절이었지만 훨씬 정이 많이 느껴 졌습니다.
기다림에 익숙해 져 있으면 사람이 마음이 여유로워 집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기다림은 결국 시간 낭비이고
경쟁에서 뒤쳐지는 필요 없는 산물이 되어 버렸죠..
이러니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유가 없습니다.
여행을 갈때도 빨리 달리면 달릴 수록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듯이 말입니다.
빨리 빨리 병.... 이건 원래 우리 민족의 모습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결국 그 어느나라 보다도 빠르게 성장하고 현재 디지털 강국이 된 것에 대한 시대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미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나라의 경쟁력이고 앞으로 더 완벽한 디지털화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아날로그만을 추억하고 있으면 도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예능 프로에서 한말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디지털로 사고 하고 아날로그로 사랑하라"
디지털로 사고해야 시대에 뒤쳐지지 않고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일은 디지털로 하되 우리의 영혼, 우리의 마음 만큼은 아날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날로그가 될수록 정이 많고 여유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쯤은 아날로그 추억의 물건들은 하나씩 꺼내서 만져 보며 그 때 그 시절의 여유를 마음속에 가져 봤으면 합니다.
오늘도 필름 카메라를 들고 나가봐야 겠네요~

